권순학 개인전 <HYPER-SPACE, The Road>
 


달려라, 하이퍼 차일드...

1. <어떤 곳>: 늦은 밤 오래된 편지들을 다시 읽는다. 먼 나라 옛 친구의 편지 하나.
그 편지 안의 한 구절: “오늘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나는 또 아연해진다.
늘 가고 싶은 어떤 곳, 그러나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 하지만 한 번도 떠나 본 적이 없는
어떤 곳... 친구야, 지금 내가, 아니 140km/h의 이 자동차가 달려가는 곳이 그곳일까?”

2. <H. Heine/ 여행기/ 1849>: “...당신도 기차를 타 보셨겠지요?
창 밖의 달리는 풍경을 보셨겠지요? 눈 앞에 공간은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간은 시간 속으로 흡수되어 지워지고 보이는 건 무서운 속도의 풍경 뿐입니다.
이 이름 없는 풍경이 앞으로 우리가 살게 될 세상이 아닐까요?
이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이 될까요?”

3. <S. Beckett/ 마지막 게임/ 1957>: “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에게는 부모도 친구도 없었다.
밤이 되면 아이는 너무 외로웠다. 그래서 아이는 자기를 여러 아이들로 나누었다.
그 아이들과 놀면서 아이는 긴 겨울밤이 지나는 줄 몰랐다...”

4. <P. Virilio/ 안 보이는 지평선/ 1987>: "역사는 이념과 정치의 역사가 아니다.
역사는 빛과 속도의 역사다. 얼마 전까지 우리는 광선의 세상에 살았다.
광선을 비추어 사물을 보았고 그 사물들의 공간이 우리의 세상이었다.
그러나 광선의 시대는 광속의 시대로 바뀌었다. 세상을 만드는 건 더 이상 광선이 아니다.
그것은 전자의 속도이고 빛의 속도이다. 광속은 공간을 없앤다. 우리의 시선은 파괴된다.
우리는 고정된 사물과 풍경을 보지 못한다. 우리가 보는 건
분열된 사물, 파열된 공간, 폭발하는 풍경, 빛의 속도가 휩쓸고 지나가는 인터페이스...
이 인터페이스가 사진의 시간이고 사진의 공간이다... "

5. <M. Cacciari/ 사진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1998>: “사진은 재현하는가?
세상을 사진 찍으면 그 세상이 또 한 번 보여지는가? 천만에. 사진은 재현하지 않는다.
사진은 창조한다: 세상을 사진으로 찍으면 그 세상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
전혀 다른 세상이 또 하나 태어난다...”

6. <나 혹은 데미우르고스>: 나를 찍으면 내가 또 한번 분열하는가?
천만에, 나를 찍으면 나도 모르는 내가 태어난다, 끝없이 태어나는 나도 모르는 나들...
무정형의 나, 유전체를 잊어버린 나의 유전자, 사진이라는 모태에서 증식하는 이 미친 광학 유전자...
이 유전자는 소멸의 유전자인가 생성의 유전자인가? 실재의 유전자인가 부재의 유전자인가?
상실의 유전자인가 유희의 유전자인가?

7. <다시 S. Beckett/ 가장 나쁜 곳으로/ 1983>: “더 나쁜 곳으로, 쉬지 말고 더 나쁜 곳으로...
중요한 건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이 아니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이다,
달리는 것이다, 기다림도 없는 곳, 도착도 없는 곳, 그 더 나쁜 곳을 향해서...”

8. <그래도 달려라, 하이퍼 차일드>: 도착할 곳이 없을 때 우리는 어디로 떠나야 하는가?
아무 것도 기다릴 것이 없을 때 우리는 무엇을 더 기다려야 하는가?
친구여, 그래도 기다릴 것은 있고 도착할 곳은 있다.
달려라, 하이퍼 차일드, 네가 존재하는 지금 이 순간을 향해서, 네가 출발하는 지금 이곳을 향해서....


김 진영 (예술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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