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일 "평사리를 추억함 "


푸른 시간의 흰 빛 1997
Weiss in die blaue stunde 1997

작가 서문

평사리를 추억함

1.

1993년 봄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과 소설 쓰는 이경자 선배, 시인 곽재구 형이랑 함께 구례 운조루를 거쳐 섬진강변 하동 평사리에 갔었다. 돌각담 너머 핀 연분홍 앵두꽃이 나그네를 유혹하고, 산 벚 바람에 실려 온 야생 햇살이 가슴에 싱그럽게 박히던 시절이었다. 녹물에 삭아 곧 바스라 질 것만 같은 함석지붕에 하얀 목련이 지고, 댓돌 위 고무신, 운동화, 장화는 꽃신으로 변해 있었다. 마을 신작로에 낡은 점방 하나가 보였는데, 주전부리 과자 봉다리 몇 개와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사이다 병과 빨래비누, 라면과 소주, 팔각성냥과 양초가 있었다. 난쟁이만한 애꾸 할머니가 홀로 사는 집은 적막이 흘렀다. 문설주에 꽃등 켜진 밤이 오면 인적은 고요하고 백열전구 비치는 창호 문엔 할머니 그림자 하나 봄바람에 파르르 떨다 잠이 들었다. 마을 한가운데 산에서 내려 온 개울물이 흘렀는데 여인들은 그곳에 모여 빨래를 했다. 한 아낙은 머리에 빨래다라를 인 채 손에 비취색 사기오강을 들고, 또 다른 이는 흰 수건을 머리에 두른 채 빨간 고무장갑 낀 손으로 스뎅 오강을 들고 왔다. 햇살 뒤집어쓴 폐가와 옹기종기한 낡은 집들, 어미젖을 빠는 강아지, 뒤란을 거니는 수탉, 마을회관과 고양이와 들꽃,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아무 것도 없었다. 평사리라는 이름에 장식이 필요 없던, 풋풋한 그 이름만으로도 아름답던 시절이었다.

2.

평사리에는 평사리가 없다.
내가 사진이라는 뷰파인더를 통해 종이 거울에 담아낸 평사리 정경과 사람들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에 존재하면서도, 부재하는 현실은 애잔하다. “모든 사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는 시간을 증언해준다” 그렇다, 사진은 “존재이자 부재의 징표”이고, 우리들 생의 시간을 증언하는 부적 같다. 평사리 사진들은, 가을 햇볕에 구릿빛으로 익어가던 ‘빈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가족의 생애가 사라진 마당과 방과 부엌에는 황혼의 빛살무늬가 눈부셨다. 순수한 기하 추상으로서의 슈프레마티즘(Suprematism) 같은 ‘빈집’ 한 채! 그 집은, 삶의 리얼리티가 거세된, 구체적 생의 이미지가 아닌, 무대상(無對像)의 관념이었다. 삭은 동아줄처럼 버려진 방안에 덩그마니 걸려있는 달력에서, 생의 낯선 시간표를 보았다. 보험회사 로고 박힌 철 지난 달력만이 해체된 생을 기억하고 있었다. 시간에 등 떠밀린 바람도 먼 곳 영원한 시간의 집으로 날아가 버렸다. 꽃들도 집 떠난 식구들을 볼 수 없었다. 인적 끊긴 마당은 잡초가 웃자라 꽃들을 삼켜버렸다. 사람과 꽃과 바람과 정령 사이의 신호 끊어진 빈집 뜨락에서, 나는 적멸(寂滅)의 시간 앞에 사위어가는 시간의 풍경을 담았다. 모든 사진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Memento Mori”에서 건너온다.

3.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이기도 한 이 마을은 유사 이래, 가장 포스트 모던하게 변화했다. 나의 사진은 모더니티의 상처 이전에 존재하고, 리얼리티의 공간 내에 부재한다. 문화는 마을로부터 시작한다. 마을은 누대에 걸친 사람들 이야기가 동화처럼 펼쳐진 세계이고, 전설과 신화가 살아 숨 쉬는 터전이다. 마을은 사람들 탯줄 묻힌 고향이기에 대처를 떠돌다 동구 밖에만 들어서도 어머니 젖 내음 맡을 수 있는 원초적 그리움의 표상이 된다. 내가 사랑했던 평사리에는 무언의 모정이 따뜻했고, 섬진강변 너른 들녘을 내다보는 공루가 있었고, 모시적삼 차림에 홍화 핀 밭길을 휘적휘적 걷던 촌로가 있었으며, 점심을 건너 뛴 낯선 나에게 어머니가 밥상을 내오듯 시래기 국으로 밥상을 차려주신 할머니가 계셨다. 그 할머니는 찬이 없어 미안하다시며 내게 어여 들라고 하셨다. 마을의 윤곽은 낮은 지붕 아래 속삭이듯 나래비 선 돌각담에 의해 자연과 조화를 이뤘으며, 그 윤곽은, 빈켈만(J.J.Winckelmann)이 <그리스미술모방론>에서 찬양한 그리스인들의 위대한 윤곽보다 더 숭고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사라져가는 풍경 속의 삶’에 대한 동경이 평사리 사진을 남겼다. 그러나 진저리치게 기억해도 작동하지 않는 내 마음속의 신기루 상평마을, 사진 속에 존재하면서도 실제에 존재하지 않는 시뮬라크르(Simulacres)의 평사리!

4.

그해 봄, 평사리를 처음 다녀온 뒤 첫사랑에 빠진 처녀처럼 시 한 편을 썼다. 1993년 6월28일자 한국일보에 <평사리에서>란 제목으로 시를 발표했는데, 이 시의 속편들이 바로 35mm 슬라이드와 흑백 필름에 담긴 평사리 사진들이다. 그 사진들은 독일 유학 중인 1998년 봄, 여름, 가을의 방학을 몽땅 쏟아 부으며 만들어졌다. 그리고 2007년 봄 십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이 작은 마을에서 길을 잃었다. 내가 기억하는 흙길은 지워지고 길 우에 또 다른 길이 포장되고 건물이 섰다. 벚꽃은 꽃비 되어 내리는데 돌각담에 기대 쭈그려 앉은 내 얼굴에 눈물방울이 스쳤다. 그해 가을 눈물이 일흔 일곱 편의 평사리 연작시를 쓰게 했다. 독일의 미술사가 레싱(G.E.Lessing)의 라오콘(Laokoon)에 관한 책을 읽다가 “그림은 소리 없는 시이고, 시는 말하는 그림”이라는 텍스트를 보았다. 나에게 평사리는 소리 없는 시였으며, 그 시는 내게 말하는 사진이었다. 그러나 시가 사진이 되고 다시 사진이 시가 되기까지 묵음의 길을 해찰해야 했다. 어찌 보면 오랜 시간 동안 연모한 흔적을 내 마음의 캔버스에 그린 시가 평사리 사진일 것이다. 그 첫사랑의 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악양 들녘 내려 보는 마을에
어머니 눈웃음 닮은 돌각담 길
조붓조붓 나 있습니다
보리밭 실개천 지나
앵두가지마다 불 밝힌
오롯한 풍경을 보셨는지요
돌각담 길에 들면
사람을 사랑 할 수 있다는 것은
저렇듯 예쁜 돌각담 길 내어주며
끊어진 세상의 길을 잇는 듯 싶습니다
슬픔과 절망도 약으로 달여 쓸 것 같은
봄바람 한줄기
앵두꽃 등 켜진 돌각담 들어섭니다.
-졸시 <평사리에서> 전문-

5.

평사리 작품들은 문화사적 관심에서 해체 이전 마을의 정경을 담은, ‘상처 사랑하기’의 사진
적 사랑법이다. 사진을 통하여 해체된 시골마을, ‘해체된 문화’의 쓸쓸함을 복원하고 싶었다. 사진의 애수를 통하여, 내면 가득 고여 오는 ‘인간’과 ‘문화’에 대한 질문을, 삶의 교역장에서 느끼고 싶었다. ‘사라지는’ 삶의 문화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삶의 인정(人情)을 가슴 가득 채우고 싶었다. 설령 부엌 아궁이에 타오르는 군불 연기처럼 이름 지을 수 없는 문화로 흩어지더라도, 우리 살점에 연기처럼 쌓이는 것도 문화려니 하고, 우리 영혼에 빛의 너울처럼 어른대는 것들도 퇴적하다보면 삶의 문화가 되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자본의 침식은 문화의 은둔을 속수무책으로 허물었다. 마을은 거룩하게 전율했다. 촌스러운 것의 아름다움을 기대한다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 촌스러움인지! 미(美)는 촌음 사이에 머물다 졌다. 1993년 봄 앵두나무로부터 1998년 치자 빛 가을까지 보았던 평사리는, 내 마음 속 유토피아였는지 모른다. 어쩌면 돌각담에 하얀 접시꽃 같은 얼굴로 피었다 지는 달무리였는지도 모른다. 전라도 구례 지나, 매화 꽃 피는 봄날 남녘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섬진강변 따라, 분꽃 핀 여름, 보랏빛 쑥부쟁이 아름다운 가을 평사리로 간다. 그러나 부르크하르트(J. Burckhardt)식으로 말하면, 어찌 할 수 없는, “공허한, 공허의 공허 vanitas, vanitatum vanitas!”여......

여기서 아름다운 청춘을 보냈지 1997
Hier eine schone Jugend verlebt 1997

 

작가 Profile

독일 로텐부르크 괴테 인스티투트에서 언어와 문화 과정을 마친 뒤, 독일 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대학 Visuelle Kommunikation학과에서 안드레 한스 교수와 그로스만 질케 교수를 사사 했으며, 동대학원 같은 학과에서 학위를 받았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책100’ 선정위원장으로 일했으며, 2006~2007 문화관광부 경주시 경주역사문화도시 북 디자인 총괄 아트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대학원에서 멀티미디어예술비평론, 현대디자인이론 등과 대학에서 문화와 예술, 미술, 디자인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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