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of Being, 불타는 나무

작가 : 문성민
장소 :
빛 갤러리
일시 : 2005년 10월24일(월) - 2005년 11월9일(수)

 

사람은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생명을 잃을 수 있으며, 조금 늦고 빠르고의 차이는 있지만 생명을 잃도록 되어있다. 만약 나라는 것이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면 만약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잃게 된다면 그때 나는 누구인가? 그릇된 삶의 방식을 증거하는 패배한 맥빠진 서글픈 증인 바로 그것에 다름 아니다. . . 소유는 사용에 의해 줄어든 어떤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반면에 존재는 실천에 의해 성장한다. (불타 없어지지 않는 불타는 나무는 바로 이 역설에 대한 성서적 상징이다.) 이성, 사랑, 예술적 및 지적 창조 등의 모든 본질적인 힘들은 표출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쓰여지는 것이 잃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보관되는 것이 잃어버리는 것이다.  

140-141페이지.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학원사.

1. to scratch. 긁다. 슬라이드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다. 슬라이드의 표면은 칼이나 송곳으로 긁힌다. 빛이 슬라이드 프로젝터로 슬라이드를 통해 벽면을 비춘다.
2. to run. 달리다. 타원형의 운동장. 관객이 앉는 의자들. 축구장 주위로 만들어진 트랙. 사람들은 달린다. 발이 땅에 닿았다가 떨어지고 다른 지점에 닿는다. 몸이 움직인다. 카메라가 달리기를 본다. "불타는 나무는 불타 없어지지 않는다." '스크래칭되기에 '스크래칭되는 이미지'는, 달리기에 '달리는 사람'은 존재한다. 불타는 나무가 불타기에 존재하듯이.불타다. 표면에서 일어나는 사건. 과정. 관계. 변하지 않는 변화. 영원의 순간. 들뢰즈적 의미. 삶의 표면에 내재하는 형이상학. '불타는 나무'는 불탐으로 나무를 비운다. 그렇게 '불타는 나무'는 불탐으로 존재한다. 나무의 표면은 공기중의 산소와 반응하고 이산화탄소와 물을 만든다. 소유와 대비된 개념으로서의 존재. 질문은 패배한 서글픈 증인을 보는가? 과정을 통과하는 창조를 보는가? 나무를 보는가? 불타다를 보는가?

문성민 개인 홈페이지:
http://myhome.naver.com/waterbreathe/

   
(140-742)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원길 52 숙명여자대학교 Tel: 02) 710-9280 / Fax: 02)2077-7501
CCopyright ⓒ 2004 Moonshin Museu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