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메트리의 환상’, 우주심(心)의 연금술
문신의 싸인펜 드로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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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는 문신미술관이 개관한지 십주년을 맞는 해다. 이를 기념하고자 지난 7월 「문신드로잉」전을 대대적으로 펼친 바 있다. 뜻 깊은 기념전에 드로잉을 품목으로 삼았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문신에게서 드로잉은 그만큼 생애의 주요 예술쟝르가 아닐 수 없다. 흔히 말하는 밑그림이 아니라, 그의 조각과 회화를 근거짓는 상위의 장르라는 뜻에서다. 조각과 그림을 ‘이끌어가고’, ‘운반해낸다’는 뜻의 ‘드라간’(dragan)을 어원으로 하는 ‘드로잉’의 참 뜻을 십분 살렸다고 할 수 있다.
지난 드로잉전을 위한 필자의 서문에서는 ‘우주심’(cosmic heart)이라는 용어를 등장시켜 그의 그로잉의 총체적인 면을 그려보았다. 이번 「싸인펜드로잉전」에서는 이 용어 아래 그의 드로잉의 주 개념인 ‘시메트리’를 상재한다. 종이와 트레싱지에 미끄러지 듯 일필되거나 섬세유려한 선들이 윤무하는 이면에는 마에스트로 문신의 ‘시메트리’라는 원리가 엄격하게 작동한다는 걸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번 전시에 선보인 드로잉이 펜을 사용했다면, 이번에는 펜 중에서도 가장 연성적인 싸인펜 드로잉을 전시한다. 모두가 1970년대 초반 작으로 대개가 20s × 30s ㎝의 드로잉북 크기거나 일부가10s × 10s ㎝단위의 작은 규모의 것들이다. 그가 1967년 8월 재도불 후부터 추상조각을 본격 정립하기 위해 루이도마가 아틀리에에서 “시메트리의 환상”이라는 주제로 그린 것들이다. 1970년 발카레스 국제조각 심포지엄에서 <<태양의 인간>>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1971년 바셀 아트페어 데뷔하던 시절의 득의에 찬 기분이 넘친다. 이 시기에 그의 작품이 전량 매진되었던 걸 염두에 두자면 그의 “시메트리의 환상”이라는 주제의 드로잉이 어떠한 의의를 가질 수 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가는 선으로부터 굵은 선에 이르는 싸인펜 특유의 맛이 이를 증언하고도 남는다. 자상한 세필에서부터 섬세한 굴곡이나 단순화한 패턴이 뚜렷한 작품들이다. 장식적인 것과 자유로운 것, 그러데이션과 단순반복이 어우러지는가 하면, 선들의 교차가 가져오는 밀집과 성김을 대비시키거나, 곡선들을 닫고 절개하는 방식이 다양하다. 중심과 주변을 연결하는 비교적 직선에 가까운 수평수직, 소용돌이와 소용돌이가 끝나는 지점의 날카로운 첨상(尖上), 인체를 환기하는 동체, 돌칼을 상기시키는 상하가 날카로운 슬림한 직립체들, 유기체의 소소한 올브(orb)와 널직한 라운드쉐입이 시사하는 매너를 일일이 매거하거나 필설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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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그의 드로잉은 대범한 시메트리를 바탕으로 미세한 시메트리의 파편들을 연출한다. 크게 보아서는 좌우대칭을 강조한다. 그러나 완전한 좌우대칭은 아니다. 아슬아슬하게 벗어난다. 교묘한 오차를 갖는다.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내 시메트리의 작화는 여느 서구의 화가들처럼 콤파스와 같은 기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끝까지 자연스러운 작화다. 중심에서 벗어나는 좌우균제의 수법은 돌출되거나 부분으로 갈수록 시메트리의 균형을 깨트려 변화를 일으킨다. 이 원리는 마치 자연의 동물이나 식물이 자라면서 변화를 가져오는 섭리와 우연하게도 일치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작업노트」에서 번안).
1980년대 원숙기에 쓴 위의 작업일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노트」의 한 구절만 보아도 그의 시메트리는 인공적인 게 아니라 자연의 성장운동을 원상(原相)으로 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의 필세가 인공적인 도구를 쓰지 않고 자연의 작용을 그 자신 몸으로 받아내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는 자신의 시메트리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이를테면 보이지 않는 우주에 대한 꿈의 현신(顯身, incarnation)이기를 기대한다. ‘인간은 현실에 살면서 보이지 않는 미래, 우주에 대한 꿈을 그린다. 만물이 엄연히 원초에서 생성했어도 이를 눈으로는 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 마에스트로는 여기서 당연히 자연과 우주의 근원으로서 시메트리가 무엇인지를 궁구한다. 그의 좌우 시메트리가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의 시메트리는 작게는 곤충?하이브리드 생명체?모세혈관?에로스 같은 미시계(界)에서 시작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신?검투사?용트림 같은 거대계에 이르는 다양체를 포함한다. 굴곡, 상승과 침몰, 돌출과 침전을 기반으로 주름과 무늬가 섬세하게 팡상짓는다. 교차(交叉, chiasma)와 교착(交錯, chiasmus)이 야기하는 만물상을 창출한다. 전체적으로 ‘라운드’(uroboros)를 변형한 만곡체를 특징으로 하지만, 그의 시메트리는 미세와 대범을 양항에 둔 우주심(心)의 표정을 붙잡는다. 정확히 말해, 우주심으로 빚어내는 연금술(鍊金術, Hermetic art, alchemy)이다. 연금술사가 쇠붙이를 불에 달군 후 두드려 값진 걸 만들 듯, 그 또한 비(卑)금속을 귀금속으로 만드는 연금술사의 눈과 손을 과시한다. 미세한 것들과 거대한 것들을 빌려 우주에 편만한 기이하고도 존귀한 상(象)을 창출한다.
그의 시메트리를 단순한 좌우대칭(left-right symmetry) 만으로 볼 수 없는 이유를 다시 한번 강조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좌우대칭이란 그의 작품을 좌우로 보았을 때뿐이다. 전체적으로는 보다 섬세 유연한 ‘역학대칭’(dynamic symmetry)으로 읽어야 한다. 그는 자연과 우주에 존재하는 무수한 역학대칭들을 붙잡는다. 역학함수가 야기하는 무수한 상수들을 붙잡는다. 서구인들은 ‘골든 프로포션’(golden proportion)을 그 전형으로 거론하지만, 이는 피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골든 프로포션의 역학상수는 명시적인 1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밖의 상수들이 허다하지만, 어느 것이나 1에 무한히 수렴하고자 할뿐, 결코 여기에 도달할 수 없다. 그 편차란 크기에 있어 너무도 다양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것이 시메트리의 묘미가 아닐 수 없다. 모두가 골든 프로포션에 안착해 있다면 세상은 또 얼마나 단조롭겠는가? 거기에 수렴하지만, 탈수렴(脫收斂, deconvergence) 또한 있어야한다.
문신의 싸인펜 드로잉은 다양한 시메트리의 상수들을 배양하는 산실이다. 이른 바, 배아(胚芽)의 방이다. 시메트리의 다양체가 숨을 쉬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신비한 공간이다. 그의 시메트리는 이 공간에서 개체를 생성하는 수렴 기능과 이를 해체하려는 탈수렴 기능, 나아가서는 양극 간의 균형을 중재하는 완충기능을 맡는다. 그 기능이 아주 다양하다. 이 기능들을 배분하는 방식에서 그 만의 형상을 산출한다. 그의 방식은 탈수렴기능과 완충기능이 수렴기능보다 우세한 게 특징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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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의 싸인펜 드로잉은 ‘싸인펜’이라는, 지상에서 가장 간편한 수단을 빌려 가장 유려한 선을 분출시킨다. 자잘한 시메트리의 배아를 살려 무한을 그려내는 우주심을 연출한다. 정지가 아니라 연속을 띤 동선을 일필휘지하듯 뿜어낸다. 모세혈관에서 대우주에 이르는 온갖 계열의 형상들을 미시계의 상수를 빌려 연출하듯 그려낸다. 시메트리의 파편들이 증식되는 모습은 자연상(象)을 방불케 한다.
형상들은, 그의 언급처럼, 추상성을 띠면서도 ‘형체가 자연스러운 까닭으로, 종종 자연형체와 일치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결과는 모두 문신의 우주심, 다시 말해서 작은 것을 빌려 무한한 크기를 껴안으려는 발심(發心)의 산물이다. 지난 전시「우주를 향하여」(09, 7. 24~9. 12) 전에 뒤이어 갖는 이번 전시는 그의 드로잉의 가장 첨예한 부분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의 드로잉이 시사하는 시메트리는 무엇보다 그의 조각의 존재방식이자 표정이다. ‘같은지 아닌지 (sym- )를 알기 위해 재어본다’(m?tron)는 옛 그리스어 ‘시메트론’(symm?tron)을 어원으로 하는 ‘시메트리’를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건 만물을 ‘한마음’으로 안으려는 ‘글로벌마인드’(圓融心)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시메트리가 사실 ‘권태’의 상징이라는 걸 그가 모를 이가 없다. 흔히 시메트리란 하잘 것 없거나 무의미한 것들의 반복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쉼 없는 배려와 감쌈의 정신이 필요하다.
자연은 끊임없는 변화가운데서도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기 위해 최대의 안정성을 구축하려고 한다.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불균형과 해체를 야기할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한 원인이자 시메트리의 최대의 적이 ‘엔트로피’다. 그래서 엔트로피를 다운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자연은 시메트리를 최선의 목표로 하게 된다. 그럼으로서 엔트로피가 만상을 좌지우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방안의 하나가 ‘잉여’(redundancy)라는 짝패와 타협하도록 배려하는 거다. 여기서 시메트리가 그 위세를 가지고 조정자로 나선다. 실로 시메트리는 최고최선의 조정자가 아닐 수 없다.
문신의 「싸인펜 드로잉전」에 즈음해서 그의 시메트리가 갖는 다양한 의의를 여러 각도에서 가늠해보는 게 중요하다. 그의 시메트리는 대극들의 균형함수를 가장 유려한 경지로 인도한다. 그럼으로써, 앞서 언급한 역학대칭의 무수한 파편들을 생산해낸다. 작가가 신체를 빌려 드로잉라인을 그어나가는 과정에서 헤아릴 수 없는 다양과 통일의 패턴이 이렇게 해서 산출된다. 드로잉 전체와 선 하나하나가 따로 있지 않다. 이것들이 융일하는 데서 마침내 개체가 탄생한다. 곤충같은, 모세혈관을 짊어진 신비한 생명체들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 모두가 그의 우주심 가운데서 발진하는 선의 형상화절차를 빌려 이루어진다. 이번 드로잉전은 다시 한번 그 의의를 새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09, 11
김 복 영(미술평론가?숙대 조형예술학과 박사좌 교수)

진행: 나진희 우혜승 이슬

보조진행: 류미선 이세훈 이해미 김미나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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