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앙상블시메트리>

 

세계적인 거장 조각가 문신(文信)의 작품 활동을 정리한 ‘문신예술 여정 60년(1948-2008) 특별전‘에 이은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두 번째 프로그램 ‘Ensemble Symmetry in Korea)' 는 새로운 역사를 향해 웅비하는 문신미술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 모습이었다.

예술사에서 ‘미술과 음악'은 새삼 거론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만큼 긴밀한 관계로 발전해 왔다. 대개 미술이 앞장서서 새 길을 개척하면 음악이 뒤 쫒아가며 이를 音으로 형상화했다 할 수 있다. 지난 9월 7일 오후 4시 국립극장에서 열린 앙상블 시메트리 내한 연주회는 악단 구성원들 면면이 유럽 현지의 유명 오케스트라 악장과 수석으로 되어 있어 문신의 명성에 어울리는 국제적인 앙상블로 출발했다. 정확히는 2006년 9월 독일 바덴바덴(Baden-Baden)에서 열렸던 문신 조각전 개막식에서 한국이 낳은 두 거장, 윤이상과 문신의 예술세계를 음악적인 화음으로 표현한 적이 바 있다. 이때의 뜨거운 관객 호응이 발화점이 되어 한국, 독일, 그리고 일본의 젊은 음악가들로 구성된 ‘앙상블 시메트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단원들은 현재 뮌헨 필하모니, 베를린 심포니, 바덴바덴 필하모닉, SWR방송 교향악단의 악장과 수석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날 음악회는 일찍이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낸 거장 문신이 ‘음악 날개'를 달고 다시 한번 세계에 국가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고 세계에 비해 오히려 국내에선 덜 알려진 문신예술의 대중화를 위한 접근 계기가 되었다.

화면을 가득채운 영상 메시지로 시작한 이날의 콘서트는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문신 미술과 음악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면서 국내에서 새로운 형태의 음악회가 되었다. 다큐멘터리기법으로 제작된 영상과 음악은 역동성과 서정성이 잘 어우러졌고 문신 선생의 예술을 처음 접하는 초심 관객들조차 이번 콘서트로 문신예술에 친화력을 느끼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절하게 노예처럼 일하고 신처럼 창조한다”는 치열한 작업관, 불꽃같은 예술혼으로 오직 창조에 모든 것을 바친 거장 문신선생의 육성은 오늘의 방황하는 우리 미술계의 갈 길을 밝혀주는 횟불인듯 했다. 영상 화면에는 ‘태양의 인간(1970년)'이 서 있는 남프랑스 페르피낭 지중해 연안 발카레스 의 푸른 하늘과 모래사장이 가득 나타났고, 우리의 함성이 담긴 ‘올림픽 1988'의 조각이 나타날땐 뿌듯한 자긍심마저 느껴졌다. 오스카 와일드가 “예술의 목적은 예술은 드러나고 예술가는 은폐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듯이 이날 저녁 문신 예술의 감동은 비록 선생의 육신은 안계시지만 그 찬란한 예술의빛이 거대하게 드러남으로써 위대한 예술의 존재감을 새삼 확인케 했다. 조각예술이 갖는 장소적인 한계를 뛰어 넘어 음악으로 다시 ‘균형', ‘조화', ‘상생'의 이미지를 구축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리셉션의 '앙상블시메트리'단원들과 최성숙 관장>

한국인 오보이스트 이영국을 리더로 하는 시메트리의 음악은 최고 악단들이 갖추어야 하는 고품격 사운드와 절제와 균형미, 통일성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단원의 호흡과 일체감도 만족할만한 수준이었고 세련되고 명쾌한 화성감은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날 저녁의 하이라이트는 세계 초연을 한 ‘예술의 시메트리'의 볼프강 마슈녀의 작품을 연주한 것. 작품은 세계적인 작품으로 손색이 없었다. 마슈녀의 원숙함이 농익어 균형, 조화, 상생의 갈등과 합일이 절제되면서도 부드럽게 전개되었다. 난해한 기법에서 벗어나 진취성, 비약, 동경심 같은 단어들이 떠오를 만큼 상큼하게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곡의 후반부는 동양적 미감과 부드러운 선의 여백이 주는 평화스러움이다. 호흡처럼 느껴지는 프레이즈로 세계를 모두 포옹하려는 거장의 숨결인 듯했다. R, 스트라우스의 ‘카프리치오'로 시작한 이날 콘서트는 쳄발로를 동원한 바로크 음악 헨델의 오보에와 스트링을 위한 “Voli per l' aria' (한국초연)에서 오보이스트 이영국은 바로크 악기톤의 표정성을 잘 살려 다감하고 포근한 음악의 호흡을 보여주었다. 각 단원들 간의 팽팽한 힘과 균형 잡힌 음감각 역시 이들의 기량을 느끼기에 충분했다.모처럼 객석을 가득매운 청중들의 뜨거운 열기는 문신예술이 음악과 함께 또 하나의 새로운 예술언어로 세계의 바다로 나갈 것이란 기대감 그 자체였다. 지난 8.15 광복절 날, 이명박 대통령께서 한국의 국가브랜드 창출을 주창한 것에 앞서, 이미 수십 년 전 문신 선생은 우렁찬 목소리로 예술로 세계를 호령했던 것이니 예술가의 창조성을 높이고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것이 품격있는 국가로 가는 우선순위 작업이 아닐까.


<공연의 1500명 관객들 - 해오름극장 로비>

이 음악회는 지난 9월 4일 마산 3.15 아트센터 대극장에서도 입추의 여지없이 큰 성공을 거둔 만큼 앞으로 국민 문화 향수권 차원에서도 널리 보급될 수 있기 바란다. 바쁜 현대인들이 미술과 음악을 한 자리에서 그것도 세계 거장의 작품을 심호흡 할 수 있다면 백번 말로 듣는 것 보다 한 번의 문화체험이 더 중요하리라 본다. 이럴 경우 문신의 실제 조각품이 무대에 한 점 놓이긴 했지만 극장 로비에 전시된다면 금상첨화라할 것이다. 전국 도처에 넘쳐나는 먹거리 축제나 알맹이 없이 관객몰이에만 열을 올리는 축제홍수를 막고 영혼의 깊은 울림을 할 수 있는 진정한 문화소통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 하나. 이러한 작업을 보면서 서로 금을 긋고 무관심하게 지나는 우리화단과 음악계도 마음을 열고 서로 소통하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장르간 소통이 없는 자폐현상을 극복하지 않으면 21세기 예술의 융합은 이뤄질 수 없다고 본다. 모처럼 예술로 가득한 행복감을 느낀 저녁이었다.

-탁계석(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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