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s of Gardening" 작가와의 만남

지속적으로 저의 관심은 예술과 사회의 문제였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를 전재로, 일제 강점기의 역사적 결과로 인하여 한국 미술계에서는 ‘예술과 사회’라는 문제를 일정부분 접어두고 지고지순의 예술을 논하는 분위였습니다. 출국 전에 민중미술이 있었지만 표현의 경직성, 포용성의 부족과 미학적 사유의 결핍은 ‘비전의 부재’를 태생적으로 내포하고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이전 세대의 예술의 탈정치화 및 탈이념화의 모토는 민주화 이후 80년대 소그룹 운동쪽의 모더니즘적 사유로 자연스럽게 헤게모니가 전이되어 나갔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들은 이전세대의 예술의 탈 이념화를 실천하면서 서구적 모더니즘을 전형으로 삼아 그들과의 ‘동시대성을 추구’하였습니다. 궁극적으로 그린버그로부터 기원한 미국적 모더니즘의 형식주의적 근본주의의 전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그것을 한국미술의 선진화로 착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외유학 자유화이후 이러한 성향은 서구유럽국가 까지 다변화 되어 그야말로 동시대성의 획득의 숙원사업은 성취된 듯 보이며 해외에서 한국현대미술의 위상이 드높아진 것도 사실인 듯합니다.
그곳에서 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 약 2년 정도의 시간을 작업은 전폐하고 생활인으로서 살면서 입학하여 작업을 시작하면서 그 전에 가지고 있었던 작업에 대한 리듬 및 감을 되살리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술과 사회’라는 관심은 지속적으로 저를 사로잡은 문제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저의 작업은 마치 신문의 사설과 같이 진행되어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에서의 작업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었다면 새로 시작한 작업들은 좀더 구체성을 띤 내용의 작업으로 전개되어나갔습니다.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작가로서 삶과 유리된 ‘예술을 위한 예술’은 거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현대미술사와 - 한국에서 대학 다닐 때 미술사시간에 인상파이후를 거의 거론한 적이 없어서 - 더불어 하우저식의 ‘예술의 사회사’에 - 한국에서 대학 다닐 때 마르크스주의의 맑자도 꺼내기 힘들었으므로 -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의 확신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의 현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안목 속에서의 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러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분이 당시 뉴욕에서 저와 약 일 년 정도 룸메이트를 하던 분이었습니다.

잠시 그분을 생각하며 저는 요즘 사람이 살면서 세 가지 꼭 필요한 人福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이고, 둘째는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는 좋은 동료를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 세 가지의 만남 중 두 가지의 만남만 갖추어진다고 하여도 그 사람은 대단한 복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돌이켜 보면 이러한 인복은 지금까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 하에서 진행된 작업은 귀국 후 1995년 ‘갤러리 2000’에서의 개인전 ‘無用之物’이후, 2000년 ‘조성희 화랑’에서의 ‘대머리의 백일몽’까지가 그 절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 현재의 김진혜 갤러리인 당시의 갤러리 ‘보다’에서 한 ‘나에게 익숙한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가진 2002년도 개인전이 아마도 작업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이 전환점으로 작용하여 저의 작업이 변한 것일까요?

전환점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전의 작업들이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에 대한 신문의 사설적 반응이었다면, ‘나에게 익숙한 것들’의 작업부터는 그러한 사설적 반응에 대한 근원에 대한 탐구로 전환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현상에 대한 관심에서 현상 너머에 있는 본질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언어학자 소쉬르는 ‘관점이 대상을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문화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매혹적인 명제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90년대 초반 뉴욕에 있을 당시에 그곳 미술계에서 가장 유행하던 어휘가 ‘다문화주의'이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양한 현상중 하나로 가장 크게 대두되었던 어휘로 기억합니다. 소위 말하는 니체의 관점주의로부터 그 연원을 이야기할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가치의 부정과 거대 담론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였다고 일반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고의 오류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관점주의자인 니체가 말한 것 중에 위버멘쉬 Ubermensch 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초인으로 알려진 위버멘쉬는 인간이 자기를 초극해 나아가야 할 목표이고, 영겁으로 회귀하는 운명을 참고, 신을 대신하는 모든 가치의 창조자로서 풍부하고 강력한 생을 실현한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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